풍경·자연

금강의 일몰

산마을* 2005. 12. 14. 22:15
금강일몰

(2005. 12. 25)



















이생진 / 그리운 바다 성산포



- 고독한 무덤 -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 고독 -


난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 낮잠 -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 무명도(無名島) -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 눈으로 살자




- 바다를 담을 그릇 -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 절망 -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절망을 만들고

바다는 절망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절망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절망을 듣는다




- 누가 주인인가 -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를 보고 있는 고립

성산포에서는 주인을 모르겠다

바다 이외의 주인을 모르겠다




- 바다의 오후 -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 섬 묘지 -


살아서 무더웠던 사람

죽어서 시원하라고 산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놔 주었다




- 삼백육십오일 -


삼백육십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 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