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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자연

숨어있는 절, 잘 늙은 절, 완주 화암사(花巖寺)

( 2019. 8. 31 )

숨어있는 절, 잘 늙은 절, 완주 화암사(花巖寺)
10여 년 전 2월 3월에 야생화 만나러 여러 번 드나들었던 화암사길
그때는 화암사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복수초와 노루귀만 만나고 돌아섰던 곳
그 후 화암사가 있다는 걸 알았고, 또 숨어있는 잘 늙은 절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서산 개심사나 부안 내소사와 같은 절을 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꾸미지 않은 옛날 고향의 시골집 같은 절,  화암사.  많이도 오고 싶었던 절이었습니다. 
가을 단풍철에 오면 더 좋을 듯싶었지만 참지 못하고 찾아보았습니다. 
까짓것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었을 때  또 찾아오면 더욱 좋겠지요. 

 

주차장이 넓게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깨끗한 공중화장실도 마련되어 있고요.
이제부터 자연의 숲길을 걸어야 합니다. 1000m, 대략 30분쯤 땀이 밸 정도 걸으면 됩니다.

화암사는 주변 그 어디에도 상가 그런 건 없습니다.
절을 찾을 때 흔히 만나는 그런 길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깊은 산속 숲길입니다.
처음엔 차들도 통행할 수 있는 넓고 평탄에 가까운 산길입니다만 조금 오르다 보면

길이 험해지기 시작하며 나무 데크길이 시작되고 데크길이 끝나면서 돌이 많은 좁고 험한 경사로가 시작됩니다.

길이 조금씩 험해지더니 철제의 147계단이 나타납니다.
철제 계단이 아니라면 도저히 오를 수 없는 험악한 바위 벼랑입니다.
여름철 우기에는 폭포도 만날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철제 계단이 만들어진 곳은 험한 바위 벼랑입니다.
무릉도원을 찾아갈 때 이런 길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인 안도현이 말한 '숨어있는 절'이란 말이 실감되고 이런 곳에 절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화암사 이정표가 있는 철제 계단이 시작되는 곳의 왼쪽으로 예전에 다니던 길이 있답니다.

바위 벼랑 위의 철제 계단이 끝나면 절까지는 100m쯤 더 올라가면 됩니다.
오르는 길 가에 조릿대(산죽)가 보입니다. (불명산 480m) 

 

갑자기 하늘이 탁 트이며 절이 빼꼼히 보이기 시작하자 새로운 세상이 나타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땀을 식히며 '꽃비 흩날리는 누각' 이란 멋진 이름의 우화루(雨花樓. 보물662호)를 바라봅니다.
화암사 앞으로 불명산에서 흘러내리는 조그만 계곡 또랑 위로 불명교 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이곳까지 도착하면 화암사의 늙은 검둥이가 제일 먼저 반겨줍니다.

 

"절은 고산현(高山縣) 북쪽 불명산(佛明山) 속에 있다.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숙하며 봉우리들은 비스듬히 잇닿아 있으니,
사방을 둘러보아도 길이 없어 사람은 물론 소나 말의 발길도 끊어진 지 오래다.
비록 나무하는 아이, 사냥하는 사나이라 할지라도 이르기 어렵다.
골짜기 어귀에 바위 벼랑이 있는데 높이가 수십 길에 이른다.
골골의 계곡물이 흘러내려 여기에 이르면 폭포를 이룬다.
그 바위 벼랑의 허리를 감고 가느다란 길이 나 있으니 폭은 겨우 한 자 남짓이다.
이 벼랑을 부여잡고 올라야 비로소 절에 닿는다. (절이 들어선) 골짜기는 넉넉하여
만 마리 말을 감출 만하며, 바위는 기이하고 나무는 해묵어 늠름하다.
고요하되 깊은 성처럼 잠겨 있으니 참으로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추어둔 복된 곳이다."

15세기에 쓴 「화암사중창기」(花巖寺重創記)에 묘사된 길과 절의 모습이랍니다.

저는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보다 민낯의 자연 그대로의 건축물이 더 좋습니다.
화암사에 오면서 일찌감치 기대하였던 것입니다만 첫 대면부터 만족스럽습니다.
역시 찾아오길 잘했습니다.

화암사에는 문이 없습니다.
어느 절에나 있는 일주문이나 사천왕문, 금강문, 해탈문, 불이문...  
하지만 화암사에는 그 어떤 문도 없습니다.
또한 범종각, 법고각 그런 것도 없습니다.
우화루(雨花樓, 보물662호) 처마 밑으로 나란히 지어진 3칸의 문간채 중 한 칸이 출입문입니다.

화암사는 경사진 곳에 남쪽으로 축대를 쌓아 터를 만들었습니다.
북쪽으로 남향의 극락전, 동쪽으로 불명당, 서쪽으로는 적묵당, 남쪽으로는 북향의 우화루
서쪽 적묵당 뒤편에 산신각, 극락전 왼편으로 철영재, 우화루 동쪽에는 명부전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우화루와 요사채인 적묵당(寂默堂) 사이로 드나들게 되어 있습니다.

사진의 정면이 대웅전인 극락전(국보 316호), 우리나라 유일이 하앙식 건축물
오른쪽이 불명당, 왼쪽이 적묵당. 극락전 정면으로 우화루(보물 662호)
극락전에는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으며 닫집의 살아 움직이는듯한 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극락전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화암사는 신라시대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1597년, 왜병의 침입으로 극락전과 우화루를 비롯한 여러 건물이 불에 타 소실(燒失)
극락전은 1605년, 우화루는 1611년에 예전의 모습대로 복구.
그 후 여러 차례의 중건(重建), 중수(重修)가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답니다. 

 

극락전(국보 316호)은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하앙식(下仰式) 건물
하앙식은 건물 바깥쪽에 처마를 받치는 부재를 하나 더 설치하여
지렛대 원리로 일반 구조보다 처마를 더 길게 내밀 수 있게 한 구조
기둥과 지붕 사이에 끼운 긴 목재인 하앙은 처마와 나란히 경사지게 놓아
처마와 지붕의 무게를 균등하게 받쳐 기둥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극락전의 현판은 글자대로 석장으로 되어 있으며 '전'자는 크기도 다릅니다.

꽃비 흩날리는 누각이란 멋진 이름의 우화루(雨花樓)는 축대를 쌓아 누각 형태로 마루와 마당의 높이가 같습니다.
바깥쪽에서 보면 2층 형태이나 안쪽에서 보면 단층입니다.

 

 

우화루(보물 662호)에는 유구한 세월에 많이 삭은 목어가 매달려 있습니다.
민낯 그대로의 목어가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지만 민낯 그대로여서 더욱 친근감이 느껴집니다.

 

 

화암사에 와서 가장 놀라웠던 것이 불명산 깊숙이 바위 벼랑 위로 성과 같은 화암사가 지어졌다는 것이었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반들반들한 적묵당의 마루였습니다.

 

어쩌면 저리도 반들반들 깨끗할까요?
적묵당 마루에 오랫동안 앉아 쉬면서 옛날 시골 고향집 마루에서 낮잠 자던 기억을 떠 올려보았습니다.
적묵당의 마루가 너무 좋아서 다시 또 가고 싶어 질 것 같습니다.

 

 

 

화암사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반겨주던 흑구.
너무 늙어서인지 눈의 눈물 자국이 추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세월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느끼며 윤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화암사는 남북으로 우화루와 극락전이 동서로 불명당과 적묵당이 마주 보는  ㅁ자 구조입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대로 우 극락전, 좌 우화루, 정면 뒤편 적묵당, 정면 앞쪽이 불명당
불명당과 극락전 사이는 철영재, 불명당 왼쪽으로 명부전.
산신각과 해우소는 적묵당 뒤편인 서쪽에 있습니다.

 

화암사는 남북으로 경사진 지형에 남쪽에 축대를 쌓았습니다.
남쪽에는 축대로,  서쪽과 북쪽으로 돌담, 동쪽은 불명산이 막아주고 있는 형태의 작은 성과 같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이미지의 고적한 산사를 꿈꾸어보지 않았을까?
세연(世緣)에 달뜬 부화(浮華)하고 경박한 절이 아니라 외로움이 깊어 무거운 적막감으로 가라앉는 그런 절,
닿는 길조차 희미해 차라리 비현실적인 실루엣으로나 그려지는 그런 절.
모르긴 해도 화암사 정도가 지금까지 남은 옛 절 가운데 그에 가장 근사치로 다가선 절이 아닐는지······."

[네이버 지식백과] 화암사 (답사여행의 길잡이 13 - 가야산과 덕유산, 2000. 2. 7.,
한국문화유산답사회, 김효형, 홍선, 김성철, 유홍준, 최세정, 정용기)

※ 달뜨다 : 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조금 흥분되다.
※ 부화 (浮華) : 실속은 없고 겉만 화려함.

 

 

 

 

 

절을 두고 잘 늙었다고 함부로 입을 놀려도 혼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나라의 절 치고 사실 잘 늙지 않은 절이 없으니 무슨 수로 형용하겠는가
심지어 잘 늙지 않으면 절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심사도
무의식 한쪽에 풍경처럼 매달려 있는 까닭에 어쩔 수가 없다.
잘 늙었다는 것은 비바람 속에서도 비뚤어지지 않고 꼿꼿하다는 뜻이며
그 스스로 역사이거나 문화의 일부로서 지금도 당당하게 늙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화암사가 그러하다. 어지간한 지도에는 그 존재를 드러내고 밝히기를 꺼리는 
그래서 나 혼자 가끔씩 펼쳐보고 싶은,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다. 
십여 년 전쯤에 우연히 누군가 내게 귓속말로 일러주었다. 
화암사 한번 가보라고, 숨어있는 절이라고, 가보면 틀림없이 반하게 될 것이라고.
잘 늙은 절 화암사 중에서 / 안도현

화암사, 내 사랑

                                               안도현
인간세(人間世)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 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아예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참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 어깨를 치고 가는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 주지는 않으렵니다.

 

 

 

 

완주의 특산물 감

주차장 근처의 수풀 속에 있는 꽃무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