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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자연

수덕여관과 고암 이응로

( 2019. 7. 29 )

수덕사의 일주문을 들어서면 바로 왼쪽으로 수덕여관이 있습니다.  동양화의 독특한 화법으로 유명한 화가 고암(顧菴) 이응로(李應魯, 1904~1989)가 일본에서 귀국하며 1944년에 구입하여 부인이 수덕여관으로 운영. 21살 연하의 박인경과 사랑에 빠져 1959년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작품 활동 공간으로 활용. 1968년 동백림사건으로 옥살이를 한 후 잠시 머물렀던 곳

수덕여관은 유일하게 남아 있는 초가집 여관으로 일제강점기에 지어졌으며 수덕사 위쪽에서부터 내려온 좁은 개울물에 놓인 돌다리 수덕교 건너에 있다.

원래는 수덕사 비구니들의 거처였으나 여류화가 나혜석을 만나기위해 드나들다가 인연이 되어 이응로가 사들였고 1959년 프랑스로 떠나면서 그의 부인였던 박귀희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여관으로 운영한 곳이라 한다.

수덕여관은 총 12개의 방과 부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운데 안마당을 두고 정면 5칸이 길에 접해 있으며 반대편으로 각각 6.5칸과 4칸이 ㄷ자형으로 감싸고 있다. 이응로가 직접 쓴 ‘수덕여관’ 현판이 걸려 있다.

이응로가 1959년 프랑스로 떠난 후 이응로를 기다리며 부인이 운영하다 사망 후 버려지다시피 한 것을 예산군이 2009년 4억 원에 사들여 옛 모습대로 복원

구한말 우리나라 신여성 3인방였던 화가 나혜석과 문인 김일엽이 거처했던 수덕여관

나혜석은 5년간 머물며 승려가 되길 원했지만 만공스님의 거절로 스님이 되지 못하였으나 김일엽은 만공스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이야기

고암 이응로는 1967년 동백림 간첩사건으로 강제 소환되어 옥고를 치르다 1969년 사면된 후 잠시 머물다 문자추상 암각화를 남긴 채 다시 파리로 떠났다.

 

 


여관 뒤뜰에는 1969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후 수덕여관에서 요양하며, 삼라만상의 영고성쇠를 문자적 추상으로 바위에 표현한 암각화 작품. 1977년 다시 백건우, 윤정희 부부가 북한으로 납치될 뻔한 사건에 연관되었다는 의심으로 우리나라 미술계에서는 그를 간첩화가라고 생각했고, 그의 작품 전시 및 판매가 금지되고 입국도 불허되자 1983년 한국국적으르 버리고 프랑스 국적을 취득

1989년 서울에서 고암의 전시회가 열렸으나 입국 불허로 주인공인 화가가 참석하지 못한 채 전시회 개최. 서울에서 전시회가 열릴 때 이응노는 파리의 작업실에서 심장 마비로 8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뒤뜰에 있는 장독대. 장독대 아래에 우물이 있다.

수덕사 일주문을 들어서기 전 왼쪽에 있는 선미술관. 2010년 개관. 수덕사 3대 방장 원담선사의 서예 작품과 고암 이응로 화백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으며 초대전을 통하여 작가들의 다양한  예술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수덕사 선미술관 앞에 있는...